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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푸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나갔다. 개척하는 지역이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라 공항에 있는 이런 도시에 나와야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다. 오랫만에 뉴스좀 보려고 터미널 한켠에 수북히 쌓여있는 영자 신문을 하나 샀다. 신문을 읽다가 지방 소식면을 폈는데 한쪽 귀퉁이에 있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딸을 죽인 아버지 체포’라고 되어 있었다.
기사는 이런 내용이었다. 상류 카스트에 속한 여자가 불가촉 천민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키도 크고 제법 잘생긴 그의 외모에 완전히 반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인도에서 다른 카스트에 속한 사람을 사랑하거나 만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카스트는 법보다도 철저하여 인생이 카스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불가촉천민이라니. 불가촉 천민은 말그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사람들로 힌두교에서는 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몸을 스치는 것은 물론 대화를 하는것도 엄격히 금지하는 것이 신앙심이 좋다는 힌두교인이 하는 생활 방식이었다.
그러니 상류 카스트에 속한 여자가 불가촉천민 남자와 만난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여자의 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를 야단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천민 남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여자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부모의 감시를 벗어나 그 남자를 찾아가곤 했다. 부모는 도저히 물리적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보내 버렸다. 일종의 격리 생활이었다. 그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천민 남자 친구를 잊지 못했다. 상사병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남자를 사모하는 마음이 불일듯 했다. 결국 축제가 열리던 날 시골의 할머니 집을 도망쳐 나온 여자는 남자 친구의 고향 마을을 찾아갔다. 남자 친구는 그녀의 그런 행동을 반기기 보다는 부모가 알게되면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르니 돌아가라고 설득을 했다. 남자 친구의 부모들까지 나서서 잘못하면 자기 집안까지도 해를 당할 것이라며 여자를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남자의 부모는 더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의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 딸이 천민 남자 친구와 함께 있다는 전갈을 받은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삼촌과 함께 달려 갔다. 그리고 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더이상 딸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불결한 딸을 데리고 사느니 가문의 명예를 위해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은 집 앞마당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그 위에 딸을 산채 묶어서 태워 죽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9살이었다.
이 신문 기사를 읽고 있는데 오래전에 만났던 자야가 생각났다. 라크나우에 있던 교회에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던 고등학교 나이정도의 소녀였다. 눈길은 허공을 바라보고,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옆에 앉아 두손을 꼭 잡고 있는데도 무섭다며 온몸을 벌벌 떨던 그녀였다.
어머니는 그런 자야를 가정 형편때문에 병원에도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귀신이 들려서 그렇다며 사두를 불러 굿을 하고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자야의 가정 형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교회에 가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무작정 교회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몇주간동안 예배도 참석하고 성경 공부 모임에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만나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해 주었다. 정성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자야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슴 깊은 곳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언니때문이었다.
그녀의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상냥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엄격한 아버지에게는 항상 불만이었다. 여자들은 집안에서 조신하고 아담하게 자라야하는데 너무 나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니를 보면 주의를 주고 옷도 원하는대로 입지 못하게 했다. 언니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자연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니가 고등학교를 막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누구한테인지 몰라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듣게 되었다. 언니가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논다는 것이었다. 그날밤 언니는 방에 갇혀 몇시간 동안 매를 맞았다. 나중에 방에서 나온 언니의 얼굴은 피와 멍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일이 있고나서 언니는 항상 조심하며 살았다. 아버지도 그런 언니의 모습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남학생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손을 만지고 몸을 건드리는 짖궂은 장난을 계속 해댔다. 공교롭게도 그 모습을 마침 릭샤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가던 아버지가 보게 된 것이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언니를 마당에 끌어내어 때리기 시작했다. 몇개의 나무 막대기가 뿌러질 정도로 맞았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고 온몸은 찢겨진 옷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나중에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거의 송장이나 다름없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폭행을 그쳤다.
그 모습을 자야는 마당끝에서 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말리기는 커녕 치마자락을 입에 물고 소리도 내지 못하며 울기만 했다. 언니의 머리가 터져 피로 얼굴이 온통 물들고 있는데도 누구 한사람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언니가 손을 부르르 떨며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니는 그렇게 매를 맞고 나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한달이 지나 상처는 거의 아물어가는데도 언니는 일어나지 못했다. 곱던 얼굴은 점점 여의고 핏기도 없이 변해갔다. 어머니는 약초를 구해다가 열심히 끓여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방에 누워 꼼짝을 못하던 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언니가 숨을 거둔날 밤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어머니 말로는 친척들이 그렇게 시켰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을 잃은 슬픔도 추스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떠난 가정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했다. 자야는 집에 혼자 남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눈만 감으면 피를 흘리며 손을 내미는 언니가 나타났다. 밤이나 낮이나 피묻은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는 어떤 남자의 환상이 자야에게 달려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밖에도 못나가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자야가 라크나우 교회에 온지 두달이 지날때부터 어머니는 아예 그녀를 교회에 맡기고 일하러 갔다. 교회는 졸지에 정신이상자처럼 변해가는 자야를 떠맡게 되었다. 집에 있어도, 다른 어느 곳을 가도 안심할 수 없었는데 교회만은 믿고 맡길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엇보다 기도를 많이 해 주었다.
나중에 다른 지역에 가서 개척 선교를 하고 있는데 담임목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회 청년중의 한명이 자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매일 기도해주고 도와 주던 형제였는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청년의 사랑으로 자야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곧 결혼할 지도 모른다던데…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치지 않고 살 수 없는 이상한 세상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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